동문 · 동기회 소식

고 김도현 소령 추모

이문호 2012.06.14 조회 1033

  
    어린이 지킨 희생…그에게 탈출은 없었다
  숨쉬는 전우 魂을 찾아서③공군8전투비행단 239특수비행대대 故 김도현 소령
에어쇼 1300명 관람객 피해 끝까지 조종간 잡아 울산공원에 흉상 제작 추진 ‘살신성인 정신’ 기려

지난달 4일 울산 남구 울산대공원 현충탑에서 고 김도현 공군소령 순직 6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고인의 모교 재학생들이
헌화한 뒤 묵념을 하고 있다. 울산매일신문사 제공

김 소령의 생전 모습. 공군제공

사람은 누구나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다. 모르는 아이가 강물에 빠지면 불쌍히 여기고 구하려는 마음이다. 그러나 실천은 결코 쉽지 않다.

 ‘내가 죽느냐, 남이 죽느냐’ 당장 결정해야 할 찰나, 우리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까?
스스로의 삶을 기꺼이 던져 마지막 빛을 발한 공군 8전투비행단 239특수비행대대 고(故) 김도현 소령. 
1973년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태어난 김 소령은 1992년 공군사관학교 44기로 입교했다. 그는 1996년 임관할 때 종합성적 4위로 합참의장상을 수상할 정도로 우수했다. 생도시절엔 예비생도 훈련대대장, 전대장생도, 동기생회장 등을 맡았다.
졸업 후 줄곧 F-5E 전투기를 조종하다 2005년 2월 블랙이글에 합류했다. 950여 비행시간을 갖고 있는 김 소령의 비행신념은 ‘겸손’으로 대변된다. 당시 블랙이글스팀에 같이 근무했던 후배 임한일(공사45기·소령) 16전투비행단 115비행대장은 “김 선배는 ‘비행은 항상 겸손하게’라는 신념을 지키며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가슴으로 전투조종사의 길을 걸었다”고 고인을 떠올렸다.

 2006년 5월 5일 어린이날, 공군10전투비행단 수원비행장. 김 소령과 블랙이글스 대원 5명은 어린이날을 맞아 에어쇼를 위해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어린이들의 탄성 속에 에어쇼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오전 11시 51분. 김 소령은 나이프 에지(Knife Edge)를 시도했다. 2대의 비행기가 마주 날아가 360도 회전한 뒤 수직 상승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하지만 김 소령이 탑승한 6번기가 치솟지 못했다. 그의 항공기가 관람석 저편 활주로로 떨어진 것은 순식간의 일. 김 소령은 그의 애기 A-37B기와 함께 산화하고 말았다. 향년 33세.

 그는 항공기를 이탈해 그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발견된 그의 왼손은 스로틀(엔진출력 조절레버), 오른손은 조종간을 잡고 있었다. 그가 탈출을 포기하고 조종간을 굳게 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사고 현장에는 어린이 등 관람객 1300여 명이 에어쇼를 관람하고 있었다. 김 소령이 그대로 탈출했다면 항공기는 어린이들을 향해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찰나에 내려진 그의 판단은 ‘나를 희생해 국민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의 희생은 어린이 등 수많은 관람객을 구한 것이다.

 그의 시신이 안치된 빈소에는 세 살, 네 살의 어린 두 아들이 죽음의 의미조차 몰라 아빠의 영정 앞에서 곤히 잠이 들었고 결혼 기념일에 남편을 잃은 젊은 아내는 슬픔을 억누를 뿐이었다. 김 소령은 가족에게 결코 원치 않았던 죄인이 됐다. 정부는 고인의 국가와 민족을 위한 위국헌신과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기려 2006년 5월 7일 보국훈장 삼일장을 추서했다. 같은 해 8월 3일 공군 사관후보장교회에서 고인의 숭고한 넋을 위로하며 고인의 가족에게 성금을 전달했다.

 고인의 참된 군인정신과 희생정신은 그의 출신 고교에서 그의 의로운 뜻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고인의 고향 울산에서도 추모행사가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 추모식은 그동안 출신고교인 울산 학성고 총동문회에서 주관해 열다가 2010년과 지난해 21회 동기생들이 맡아 추모식을 진행했다.

 더 나아가 지난 3월 27일 뜻이 있는 고교 총동문회 회원 등 50여 명이 모여 ‘김도현공군소령추모사업회(공동회장 최광식· 서오석)’를 설립한 것. 이 사업회는 지난달 4일 울산대공원 현충탑에서 고인의 순직 6주기 추모식을 거행했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고인의 모교인 학성고 재학생과 동문, 유족 등 120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사업회 최광식 공동회장은 “고인이 남기고 간 숭고한 뜻과 정신을 오래도록 추모하고자 사업회를 설립했다”며 “시간이 고인에 대한 기억을 흐리게 할 수는 있어도 드높은 뜻을 잊게 할 수는 없다”고 사업회 취지를 알렸다.

 김 소령의 고등학교 동기 이원호 추모사업회 사무국장은 고인에 대해 “학창시절 전교회장으로서 정의롭고, 늘 궂은일에도 앞장 섰던 친구”라고 떠올리며 “도현이는 떠났지만 희생정신은 우리들 가슴속에 살아 숨쉴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사업회는 고교 후배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 김 소령의 숭고한 넋을 널리 기리고자 울산공원에 고인의 흉상을 제작할 계획이다. 아들을 떠나보낸 지 6년이 지났지만 매일 생각난다는 고인의 아버지 김용조(66·울산시 태화동) 씨는 “당시를 생각하면 끔찍하다. 탈출했을 법도 한데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고 대형참사를 막은 아들이 장하다고 생각한다”며 “눈감는 날까지 아들을 떠올릴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추모행사와 관련해 어머니 김기순(64) 씨는 “우리 애를 아직까지 잊지 않고 해마다 추모식을 열어줘 고맙다”며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조아미 기자   joajoa@dema.mil.kr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등록
첨부파일
2012.06.06
2012.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