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0.06 02:37 | 수정 : 2012.10.06 03:10
"우리 가족이 내 죽음을 자랑스러워했으면… 나로 인해 軍사기 실추됐음을 사과해야"
故 오충현 대령의 유족 만난 서울대생들 "조국을 무엇보다 앞세운 분… 정말 대단"
故 오충현 대령
5일 오전 서울대학교 총장실. 박소영(45·군무원)씨가 손바닥만 한 F-5F 전투기 모형을 오연천(61) 서울대 총장에게 건넸다. F-5F는 우리 공군이 보유한 오래된 기종 중 하나이며,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출동하는 전투기다. "(남편은) 사고가 났지만, 노후 전투기 조종사들이 있어 영공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걸 보시면서 공군과 조종사들을 생각해 주세요."
이날 오전 11시 30분부터 고(故) 오충현 대령의 부인과 아들딸, 서울대 오연천 총장과 봉사단체 '나눔실천단' 대표 박선진(농경제사회학부 3년)·학생홍보대사 회장 조선정(서어서문학과 3년) 학생의 만남이 시작됐다. 이날 두 학생은 "오 대령의 애국심을 함께 배워야 한다"며 오 총장이 불러 자리를 함께 했다. 오 대령(당시 중령)은 2010년 3월 전투기를 갓 몰기 시작한 후배를 F-5F 앞좌석에 태우고 훈련 비행을 하다가 추락해 순직했다. 국방부는 공사를 수석 졸업한 뒤 비행시간 2800시간을 기록한 43세 파일럿 오 중령을 당시 대령으로 추서했다. 오 대령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은 것은 최근 그가 1992년 순직한 동료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뒤 쓴 일기가 공개되면서부터였다〈본지 8월 31일자 A33면 참조〉.
오 대령은 18년 뒤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 가족에게 당부하는 말을 일기에 담았다. 그는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은 내 죽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담담하고 절제된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면서 "나로 인해 조국의 재산과 군의 사기가 실추됐음을 깊이 사과할 줄 알아야겠다"고 했다.
이 같은 사연을 신문에서 접한 오 총장은 공군 측에 고인의 유족을 수소문했다. 연락이 닿아 만나는 데 한 달 반이 걸렸고, 이날 면담 후 총장 공관으로 자리를 옮겨 1시간여 '특별한' 오찬을 가졌다.
"(만나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지성인의 표상인 총장님 아닙니까. 자녀를 생각하는 든든한 마음으로 왔습니다."(박씨)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했습니다. (박씨의) 첫인상이 평화롭고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남편에 대한 자부심으로 슬픔을 뛰어넘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 총장)
5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규장각 앞에서 고(故) 오충현 대령의 유가족과 서울대학생들이 함께 앉아 웃고 있다. 오 대령의 유가족은 이날 서울대 오연천 총장의 초청을 받아 오 총장을 면담했지만, 오 총장은“고인의 이야기에 감동을 하여 뜻을 기리고자 유족을 초청한 것일 뿐 사실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면서 사진 촬영을 정중히 거절했다. 왼쪽부터 박선진(21·농경제사회학부 3학년)씨, 오 대령의 딸 유빈(16)양, 부인 박소영(45)씨, 아들 상철(20)씨, 조선정(23·서어서문학과 3학년)씨. /원선우 기자 sun@chosun.com
박씨의 곁에는 오 대령이 세상을 떠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들 상철(20)씨가 있었다. "아빠 대신 엄마를 보호해 주겠다"면서 따라왔다고 했다. 국가 유공자의 아들인 상철씨는 군 면제 대상이지만 "아버지처럼 공군에 지원하겠다"고 했다.
고인의 아내 박씨는 오찬 내내 담담한 모습을 유지했다. 박씨는 "사고 직후 빈소에 있을 때 '난 지휘관 참모의 아내'라 생각했다"며 "의연하게 있었고 지금도 참 그렇게 하길 잘했구나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전업주부였던 박씨는 공군 측의 배려로 지난해부터 군무원으로 수원공군기지에서 일하고 있다.
박씨의 모습을 보던 서울대생 박선진씨는 "일기 내용을 보고 가족이었으면 섭섭했을 텐데 정말 대단하다"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조선정씨는 "군 시절 '내가 많이 힘들다'라 생각한 게 부끄럽고 반성된다"라고 했다.
화기애애하게 얘기가 오가던 중 박씨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조종사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알투비(R2B)라고 합니다. 리턴 투 베이스(무사 귀환)라는 건데, 남편은 갔지만 우리 가슴속엔 그가 리턴 투 베이스 했습니다."
오 총장은 이렇게 답했다. "나라를 위해 산화한 사람과 그 가족을 기리는 것, 그게 국가가 지켜야 할 가치이고,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