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언 성토
관리자 2008.11.25 조회 1190
이재정 장관의 망언 성토
北의 ‘빈곤’에 대한 ‘책임’은 金正日의 몫이지 大韓民國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이 장관의 이 말은 전적으로 틀린 말이다. 용납할 수 없는 망언(妄言)이자 방언(放言)이다. 우선 이 장관은 지금 전혀 성격과 차원이 다른 2개의 상이한 문제를 혼동(混同)하고 있다. 우리가 같은 동포의 입장에서 북한의 어려운 동포들에게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성의를 가지고, 가능한 한도 안에서, 동포애와 인도주의의 차원에서, 먹을 것, 입을 것, 덮을 것, 땔 것들을 도와주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1971년 남북간에 대화의 길이 뚫린 이후 계속 그렇게 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북의 ‘빈곤’에 대해 우리가 ‘책임’을 ‘감수’한다는 것은 그것과는 차원이 엉뚱하게 다른 별개의 문제다. 도대체 우리가, 대한민국이, 어떻게 북한의 ‘빈곤’에 대해 ‘책임’을 ‘감수’한다는 말인가? 고금동서(古今東西)를 막론하고 인류역사를 통하여 ‘빈곤’을 자신이 아닌 남의 힘으로 극복한 사례는 없다. 그래서 사람의 입에 회자(膾炙)되는 말이 있다. “빈곤은 임금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빈곤’은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만 극복될 수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俗談)이 말해 주는 진리(眞理)가 바로 그것이다. “하면 된다”ㆍ“할 수 있다”(Can Do)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룩해 낸 대한민국의 성공 사례(事例)가 이 진리를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북의 ‘빈곤’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북한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김정일(金正日) 정권의 몫이지 대한민국의 몫이 아니다. 북의 ‘빈곤’에 대한 ‘책임’을 대한민국이 ‘감수’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북한이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대한민국에 통합되던가, 그렇지 않으면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고 이를 대체하는 새 정권이 등장하든지 아니면 지금의 김정일 정권이 생각을 바꾸든지 해서 대한민국에게 북의 ‘빈곤’을 해소할 ‘책임’을 ‘위임’하는 일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재정 장관은 과연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에게 이 같은 전제조건의 충족을 요구할 용기가 있다는 것인가.
무릇 세상의 모든 현상은 ‘원인’이 있어서 생겨난 ‘결과’다. 북의 ‘빈곤’도 그 ‘원인’을 알아야 극복이 가능한 일이다. 이재정 장관은 북의 ‘빈곤’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1948년 한반도의 남과 북에 2개의 분단국가가 등장했을 때 남북의 경제력 비교는 북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이재정 장관은 인식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 뒤 60년의 세월이 경과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성공한 나라’가 되었고 북한은 세계 200여개 국가 중에서 바닥을 헤매는 ‘실패한 나라’가 되었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역사가 설명해 준다. 남이 ‘올바른 선택’을 한 반면 북은 ‘그릇된 선택’을 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오늘날 남북한에 전개되어 있는 현실은 그 같은 ‘원인’의 ‘결과’인 것이다.
2005년도 자료로 본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국민 총생산 기준으로 세계 200여개 국가 가운데 10위다. 53년 13억 달러였던 우리의 GNP는 605배인 7,868억 달러로 늘어났고 1인당 GNP는 67 달러의 243배인 16,291 달러로 늘어났다. 우리는 ‘분단’ 이전에는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에 비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945년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의 98%, 유연탄의 87%, 역청탄의 98%, 전력의 92%가 북한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1960년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인구 때문에 비록 GNP는 19억 대 17억 달러로 남한이 근소하게 앞섰지만 1인당 GNP는 94 대 137 달러, 수출액은 3천3백만 대 1억5천4백만 달러로 북한이 크게 앞서고 있었다. 1945년 해방 이전의 남북한의 경제구조는 남농북공(南農北工)ㆍ남경북중(南輕北重)으로 북이 주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역전(逆轉)된 남북한의 경제는 이미 비교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최근 미국의 Foreign Policy와 Fund for Peace라는 기관이 발표한 ‘2006년도 실패한 국가지수’(Failed States Index)에 의하면 북한은 조사 대상 146개국 가운데 14위였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은 123위다. ‘국가분단’이 회갑(回甲)을 맞이하려 하고 있는 시점에서 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회복 불가능한 ‘실패한 나라’다. 북한의 ‘국가위험도’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기고 있다. <유로머니>는 세계 185개국 가운데 185위로,
이 같은 ‘결과’의 ‘원인’은 1945년에서 1948년까지의 ‘해방공간’에서 2개의 ‘분단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남과 북의 상반된 ‘선택’에 있었다. 남의 ‘선택’은 ‘민주주의’와 ‘자유’였고 북의 ‘선택’은 ‘공산주의’와 ‘독재’였다. 남의 ‘선택’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경쟁사회’였고 북의 ‘선택’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입각한 ‘명령사회’였다. 남의 ‘선택’은 ‘개방’과 ‘국제화’였고 북의 ‘선택’은 ‘폐쇄’와 ‘고립화’였다. 이 같은 ‘선택’의 ‘결과’가 지금 우리의 눈앞에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 동안 남북간에 벌어진 이 같은 엄청난 발전의 격차는 1948년 일시적 ‘차선책(次善策)’으로 ‘통일’을 잠시 유보하고 ‘분단’의 길을 택한 대한민국 건국주역(建國主役)들의 ‘선택’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입증해 주었다. 이 때 ‘분단’의 ‘선택’은 곧 ‘체제’와 ‘이념’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단’을 ‘선택’한 결과로 그 동안 남북간에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가운데 상호 우열(優劣)과 사활(死活)을 다투는 체제경쟁이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이 체제경쟁에서 남쪽의 대한민국이 승자(勝者)가 되었다. ‘체제’와 ‘이념’의 승리였다.
이 같은 체제경쟁의 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하여 북한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분단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이 분단국가의 지배자인 김일성(金日成)ㆍ김정일 정권이야말로 북의 ‘빈곤’을 초래한 ‘원인’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원천적으로 북의 ‘빈곤’을 해소시킬 능력이 없는 존재임이 입증되었다. 그 같은 ‘원인’의 해소 없이 북에 제공하는 ‘퍼주기’ 식 물질적 지원은 북한동포들의 ‘빈곤’ 극복과는 상관없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다는 것을 지난 9년간의 이른바 ‘햇볕정책’ 또는 ‘대북포용정책’의 전말(顚末)이 증언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북의 ‘빈곤’ 극복은 이 같은 ‘원인’ 해소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되는 일이지 이재정 장관의 말처럼, ‘민족’의 차원에서, 우리가, 대한민국이, 그 ‘책임’을 ‘감수’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自明)해 진다. 만약 이재정 장관이 진정 북한동포들의 ‘빈곤’ 해소에 관심이 있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엉뚱하게 그 ‘책임’을 전가시킬 일이 아니라 ‘원인’ 해소의 차원에서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해체하고 대한민국으로의 통합을 수용하든가 아니라면 스스로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든지 또는 다른 유능한 인물이나 세력에게 권좌(權座)를 물려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재정 장관이 오해(誤解)하거나 착각(錯覺)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그가 대한민국의 ‘통일부장관’이지 ‘남북대화부장관’이나 ‘남북협상부장관’이 아님은 물론 북한정권의 ‘대변인’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에게는 대한민국 헌법이 부여하는 직분이 있다. 그것은 헌법 제4조에 의거하여 ‘평화적’ 방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통일’을 이룩하여 헌법 제3조가 요구하는 대로 ‘한반도 전역과 그 부속도서’가 대한민국 ‘영토’로 편입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헌법 제8조에 의거하여 ‘계급노선’에 입각하여 ‘공산화’ 통일을 추구하는 ‘공산주의’ 정당은 대한민국에서 불법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재정 장관은 이 같은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통일부장관’ 직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이에 따른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성공한 체제’인 대한민국과 이미 회복불능의 ‘실패한 체제’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뒤섞는 ‘비빔밥’을 만들어 함께 망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그의 직분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간판을 내리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통일을 수용하게 만드는 ‘통일정책’을 수립ㆍ추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북한동포들에게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재정 장관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재정 장관은 문제의 이메일에서 “큰 틀에서 한반도 전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을 운운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 장관 본인의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던지 그 한계는 자명하다. 헌법을 사전(事前)에 개정하지 않는 한 그는 헌법 제3조와 제4조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만약 그가 헌법의 사전 개정 없이 제3조와 제4조의 테두리 밖에서 “큰 틀에서 한반도 전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을 말하고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 형법 제91조 제1항의 ‘국헌문란죄’를 범하는 것임을 이 장관 자신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의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 한반도의 안보는 언제나 위험스러울 것이며 평화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재정 장관의 말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망언이다. 그의 이 같은 말은 1953년 6.25전쟁이 휴전으로 봉합된 뒤 54년의 세월이 경과하는 동안 철통같은 안보태세의 유지로 전쟁재발을 억지해 온 국군 장병들에 대한 공공연한 모독(冒瀆)으로 지난 12월21일 이재정 장관이 수석부의장으로 있던 민주평통 정책자문회의에서 젊은이들의 병영생활을 “썩히는 것”이라고 표현했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망발(妄發)과 궤(軌)를 함께 하는 망언이다.
결론적으로 이재정 장관이 2일 통일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의 내용은 그가 ‘통일부장관’으로서의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구비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보여준 결정적 사례였다. 더구나, 많은 국민들은 그의 이번 이메일이 금년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에서 현 정권세력에 의한 정권 재창출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북의 독재자 김정일에게 보낸 ‘러브 콜’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재정 장관의 이번 처사는 ‘통일부장관’의 입장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부적절한 행위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재정 장관은 장관직을 수행하기에 앞서 남북관계의 현실과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 공부할 필요가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선 이재정 장관은 스스로 통일부장관 자리를 내놓는 것이 그 자신이나 대한민국을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봉사가 될 것 같다. [끝]
이동복(전 명지대 교수 http://www.dblee2000.pe.kr/)